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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108산사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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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김룡사(金龍寺, 문경 운달산)
2017-11-06 15:21:56

경북 문경시 산북면의 운달산(雲達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의 본사인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인데 일제강점기에 31본산의 하나였다.

 

30년 수도를 마친 성철스님이 최초로 설법을 하였다는 김룡사는 신라 진평왕 10년(588년)에운달(雲達)조사가 창건하여 운봉사(雲峰寺)라고 하였다.

그 후 조선 인조 2년(1624년)에 혜총(慧聰)선사가 중건하였는데, 1642년 화재로 모조리 불타버려, 1649년에 의윤(義允)·무진(無盡)·태휴(太休)스님이 대웅전을 짓고 김룡사()로 개칭하였다. 그 후 효종 1년(1650년) 유주(有珠)스님이 범종루(梵鐘樓)를, 대염(大稔)스님이 첨성각을, 서헌(瑞軒)스님이 선당(禪堂)을, 두청(杜淸)스님이 승당(僧堂)을, 민운(敏雲)스님이 정문(正門)을 세운 것을 비롯해 여러 번에 걸쳐 여러 스님들에 의하여 전각·문두가 세워졌고, 또 중수가 이루어졌다.

 

《사적기(寺蹟記)》에 사명(寺名)에 얽힌 전설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수십 개에 이르는 전각들의 창건·중수·단청·개와(改瓦)·상량문 등 사찰과 관련된 문서들이 잘 보관되어 있다.

 

일제 치하인 1940년대에 큰 방채와 종루를 개축했다. 1997년 12월 30일 밤 화재로 설선당(說禪堂), 해운암(海雲庵), 범종루(梵鐘樓)등 핵심건물을 소실했고, 최근 설선당과 해운암 및 범종루 등을 중건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전국 31본산의 하나로서 50개의 말사를 거느린 큰 절이었으나, 지금은 교통이 불편해 옛말사였던 직지사의 말사가 되었다.

 

김룡사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것이 2점이 있는데 이 지정문화재는 김룡사괘불(지방유형문화재 제303호)과 김룡사대웅전(문화재자료 제235호)이 있다.

 

일주문에는 문 윗부분에 '홍하문(紅霞門)' 아랫부분에 '운달산 김룡사(金龍寺)'라고 쓴 서화가 김규진(1868~1933)의 글씨가 있고, 대웅전에는 1644년에 조성된 삼장탱화(三藏幀畵)와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김룡사에는 한꺼번에 3백인을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최대의 온돌방으로서 자연 지층을 그대로 이용하여 건축한 경흥강원이 있었으나 화재로 소실되었다 복원을 했다. 이 절에는 또 시대를 알 수 없는 석조약사여래입상과 조선중기의 것으로 보이는 맷돌, 떡시루, 쇠북, 범종, 지옥의염라왕청에서 죽은 이가 생전에 지은 선악의 행업이 나타난다는 업경대(業鏡臺) 등이 남아 있다. 업경대는 현재 직지사 불교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융성하던 시절 14개에 이르던 암자도 대부분 없어지고 지금은 화장암, 양진암, 대성암, 금선대 등 4개의 암자만 남아 있다.

 

김용사가 강원도량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강원인 설선당 때문이다. 1997년 화재로 불에 탔다가 이듬해 복원된 설선당은 3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건물로 국내에서 규모가 큰 온돌방 가운데 하나다. 36평이 조금 넘는 크기인 설선당은 불이 나기 전 아궁이가 어린이들이 서서 들어갈 만큼 컸다고 하나, 복원하면서 아궁이는 현대식으로 바뀌었다.

 

김용사에서 또 하나 주목받는 것은 측간인 해우소이다. 김용사 해우소는 우리나라 사찰 화장실 중 그 형태를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조선 중기의 측간이다.

 

김룡사가 번성을 누리던 때는 소작미만도 2,000석이 넘었고 건물도 1,188평에 48동의 거찰로 한일합방 후에는 31본산중의 하나로 45개의 말사를 관장해 왔으며, 도제교육(徒弟敎育 ) 기관인 경흥강원(慶興講院)에서는 근대 불교사에 많은 인재배출의 산실을 담당하였으니, 초대 동국대학교 총장이었던 권상로 대종사를 배출하였고, 성철·서암·서옹 등 많은 선지식들이 주석(駐錫)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