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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108산사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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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대전사(大典寺, 청송 주왕산)
2017-11-06 15:11:37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주왕산(周王山)에 있는 사찰,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 12년(672년) 의상(義湘)대사가 세웠다는 설과 고려 태조 12년(919년) 눌옹(訥翁)스님이 창건했다는 설도 있다.

 

절이 있는 산과 절의 이름은 주왕의 설화에서 유래한다. 주왕산 북서쪽 초입에 자리하고 있는데, 사방으로 깎아 세운 듯한 거대한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쌓인 웅장한 절경이 펼쳐진다.

 

《주왕내기(周王內記)》에 따르면, 중국 당나라의 주도(周鍍)라는 사람이 스스로 후주천왕(後周天王)이라 칭하고 군사를 일으켜 당나라에 쳐들어갔다가 크게 패하고 신라로 건너와 주왕산에 숨었다. 이에 당나라가 신라에 주왕을 없애달라고 부탁하자 마일성장군 어형제를 보내 주왕의 무리를 죽였다고 한다. 그 뒤부터 주왕이 숨었던 산을 주왕산이라 하고, 절은 주왕의 아들 대전도군(大典道君)의 이름을 따서 대전사(大典寺)라 하였다. 절 이름은 나옹화상 혜근(惠勤)스님이 붙였다. 또한 신라 의 주원왕(周元王)이 수도했던 산이라서 주왕산이라고 부른다는 설도 있다.

 

창건 이후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신중동국여지승람》 에는 주방사(周房寺)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 유정(惟政)스님이 승군을 훈련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다. 조선 중기에 불에 탄 것을 다시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부속 암자로는 백련암(白蓮庵)과 주왕암(周王庵)이 있다.

 

임진왜란 때 대부분 당우가 소실되었고, 조선 현종 13년(1672년)에 중건하였다. 영조 27년(1751년) 실학자 이중환(李重煥)이 쓴 「택리지(擇里志)」에는 대전사가 신선과 스님이 살기좋은 곳이라고 하였는데, 실제로 이 절에 예로부터 수많은 시인과 묵객, 선승이 머물렀던 적이 있다고 한다. 예컨대 신라의 최치원(崔致遠), 고려의 나옹(懶翁) · 도선(道詵) · 지눌(知訥), 조선의 무학대사(無學大師)와 서거정(徐居正) · 김종직(金宗直)등이 그들이다.

 

이 중 백련암은 주왕의 딸 이름에서 유래하며, 옛날에는 이 암자에 큰 종일 걸려 있어 아침 저녁으로 은은한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고 하나 지금은 걸려 있지 않다.

 

주왕암은 《신중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주방사로 추정되며, 나한전과 가학루 · 산령각 등이 남아 있다. 주요 건물로는 보광전(普光殿)과 명부전·산령각·요사채 등이, 유물로는 보광전 앞 삼층석탑과 사적비·부도 등이 남아 있다.

 

이 중 보광전(유형문화재202호)은 정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임진왜란 당시 이여송(李如松)이 사명대사에게 보냈다는 친필 서신을 목판으로 음각한 것이 보관되어 있다.

 

절 오른쪽 밭에는 우물을 메운 자리가 남아 있는데, 이 우물에 얽힌 전설이 전한다. 본래 이 절에서는 부처님에게 올리는 다기 물을 매일 냇가까지 가서 길어오곤 하였다. 이를 귀찮게 여긴 승려들이 조선 중기에 앞뜰에 우물을 파고 그 물을 길어서 청수(淸水)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곧 불이 나서 전각이 불에 타고 말았다. 뒷날 한 소사가 와서 불이 난 이류를 서명하기를,

이 절의 지세는 배가 바다에 떠서 다니는 부선형(浮船形)인데 우물을 판 것은 마치 배 바닥에 구멍을 낸 것과 같다고 하였다.

 

이 말을 듣고 다시 우물을 메웠다 한다. 이 밖에 노루가 우물에 빠져 죽은 뒤 메웠다는 설도 있고, 임 물을 마신 승려들의 힘이 넘쳐 난폭해지는 바람에 인근 주민들의 원성이 많아지자 에웠다는 이야기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