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명

전국108산사도량

Home > 순례안내 > 전국108산사도량

게시글 검색
54. 부석사(浮石寺, 영주 봉황산)
2017-11-02 11:14:18

경북 영주시 부석면 봉황산(鳳凰山) 중턱에 있는 절로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근본도량(根本道場)이다. 신라 문무왕 16년(676년)에 의상(義湘)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창건하고 화엄의 큰 가르침을 폈던 곳이다. 전설에 의하면 당나라에서 유학중인 의상스님을 흠모한 여인 선묘(善妙)낭자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날아 왔다고 한다.

용은 이 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 500명을 바위를 날려 물리쳤고 바위는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아 ‘부석(浮石)’ 이라고 각인되어 지금도 남아 있다.

이후 부석사는 고려 현종 7년(1016년)에 원융국사(圓融國師)가 무량수전(無量壽殿)을 중창하였고 우왕 2년(1376년)에 원응국사(圓應國師)가 다시 중수하고, 이듬해 조사당(祖師堂)을 재건하였다. 조선시대에 부석사를 중수한 기록은 자주 발견된다.

 

조선 성종 21년(1490년)에 조사당을 중수하였고 성종 24년(1493년)에 조사당에 단청을 하였다. 명종 10년(1555년)에 화재로 인해 안양루가 소실되었으며 선조 6년(1573년)에는 조사당 지붕을 개수하였다.

선조 9년(1596년)부터 11년까지 석린스님이 아양루를 중건하였다. 조사당 아래의 취원루는 사명대사 등 여러 선객들의 수도처로 유명했다. 광해군 3년(1611년)에는 폭풍우로 인해 무량수전의 중보가 부러져 중수하였고 경종 3년(1723년)에는 무량수전 보존불의 금색을 다시했다.

영조 22년(17456년)에 화재로 숭당, 만월당, 서별실, 만세루, 범종각 등이 소실되었으나 그 이듬해에 중수하였고 영조 44년(1765년)에는 무량수전 본존불의 개금을 했다.

 

일제시대인 1916년에 무량수전과 조사당을 해체 수리하였는데 이때 허리 부분이 잘린 석룡()이 노출되었다고 한다. 또한 무량수전 서쪽에 있던 취원루를 동쪽으로 옮기고 취현암이라 한 것도 이때라고 한다.

 

1967년에 부석사의 동쪽 옛 절터에서 쌍탑을 옮겨 범종각 앞에 세웠고 1969년에는 무량수전 번와 불사를 하였으며 1977년부터 1980년에 걸쳐 전체 절전역을 정화하면서 일주문, 천왕문, 숭당 등을 신축하였다.

 

경내에는 무량수전(국보18호), 조사당(국보19호), 소조여래좌상(塑造如來坐像:국보45호), 조사당 벽화(국보46호), 석등(국보 17호)등의 국보와 3층석탑(보물249호), 석조여래좌상(보물220호), 당간지주(幢竿支柱,보물255호), 고려각판(보물735호)등의 보물, 원융국사비, 불사리탑 등의 지방문화재를 비롯하여 삼성각(三聖閣), 취현암(醉玄庵), 범종루(梵鐘樓), 안양문(安養門), 응향각(凝香閣) 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또 신라 때부터 쌓은 것으로 믿어지는 대석단(大石壇)이 있다.

 

부석사를 창건한 의상스님의 제자가 3,000명이나 있었다고 하는데 그 중에서 10대덕(十大德)이라 불리는 오진(悟眞) · 지통(智通) · 표훈(表訓) · 진정(眞定) · 도융(道融) · 양원(良圓) · 상원(相源) · 능인(能仁) · 의적(義寂)스님 등은 모두 화엄을 현양(顯揚)시킨 승려들이었다.

이 밖에도 ≪송고승전(宋高僧傳)≫에 그 이름이 보이는 범체(梵體)나 도신(道身) 및 신림(神琳) 등도 의상스님의 훌륭한 제자였으며 이후의 부석사와 관계된 고승으로는 혜철국사(惠哲國師) · 무염국사(無染國師) · 징효대사(澄曉大師) · 원융국사 · 원응국사 등이 그 법통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