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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 쌍계사(雙磎寺, 하동 삼신산)
2017-11-02 10:27:04

삼신산(三神山) 쌍계사(雙磎寺)는 육조혜능(六祖慧能)의 머리 무덤이 있는 절로 유명한 대한불교조계종 13교구 본사이다. 명산 지리산(智異山)은 침범하기 힘든 그 기사응로 인해, 또 깊고 넓은 품이 세상 모든 것을 소유하고도 남을 것 같아 예로부터 삼신산이라 불러왔다.

 

이 지리산 남쪽에 자리 잡은 쌍계사는 현판을 삼신산 쌍계사라고 달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한반도 남단의 단순하게 높은 산 지리가 아니라 힘과 조화와 능력을 가진 산으로서의 삼신산에 자리 잡은 큰 가람임을 자부하고자 함일 것이다.

 

쌍계사는 신라 성덕왕 21년(722년) 대비(大悲), 삼법(三法) 두 법사가 당나라에서 육조스님의 정상(頂相)을 모시고 와서 ‘지리산 곡설리 갈화처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범의 인도로 이곳을 찾아 절을 지어 조사를 봉안하고 옥천사(玉泉寺)라고 이름 지었다.

 

쌍계사가 대찰로 변모한 것은 진감국사 혜소(慧昭)스님에 의해서다. 당나라에서 공부한 후 신라 흥덕왕 5년(830년)에 귀국한 스님은 상주 설악산(雪嶽山) 장백사(長柏寺/현 南長寺)에 잠시 머물며 범패를 가르치기도 했으나 곧 옥천사로 옮겨 크게 중창불사를 벌였다.

 

이후 문성왕 2년(840년) 진감선사가 중창하여 대가람을 이루었으며, 중국 유학에서 돌아온 진감선사는 차 종자를 가지고 와 이곳 지리산 주변에 심고 대가람으로 중창하니 뒤에 정강왕이 선사의 도풍을 앙모하여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리었다.

 

그 후 임진왜란 때 크게 소실되었으며, 조선 인조 19년(1641년) 벽암스님에 의해 중건된 이래 숙종 21년(1695년), 영조 11년(1735년)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혜소스님은 당나라에서 가지고 온 차 종자를 심어 이 일대를 차의 주산지가 되게 하였다.

 

쌍계사내에는 진감선사대공탑비(국보47호), 부도(보물380호), 대웅전(보물500호), 팔상전영산회상도(보물925호), 대웅전삼세불탱(보물1364호), 팔상전팔상탱(보물1365호), 목조삼세불좌상 및 사보살입상(보물1378호), 석등(유형문화재28호), 일주문(유형문화재86호), 팔상전(유형문화재87호), 명부전(유형문화재123호), 나한전(유형문화재124호), 육조정상탑전(유형문화재125호), 천왕문(유형문화재126호), 금강문(유형문화재127호), 칠불사아자방지(유형문화재144호), 소장불경책판(유형문화재185호), 삼장보살탱(유형문화재384호), 팔상전신중탱(유형문화재185호), 국사암아미타후불탱(유형문화재386호), 지리산쌍계사(기념물21호), 차나무시배지(기념물61호), 설선당(문화재자료153호), 적묵당(문화재자료46호), 마애불(문화재자료48호), 팔영루(문화재자료74호)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현판과 주련 들이 많아 눈길을 끈다.

 

아직 오염되지 않은 유일한 강이라는 섬진강의 푸른 물을 만날 수 있는 쌍계사 가는 길은 요행이 장날에 찾아가게라도 돌 경우 경상도와 전라도의 사투리가 잘도 어우러지는 화개장터의 오염되지 않은 인심도 함께 볼 수가 있다. 더욱이 봄날 제철을 만날 경우 10리 벚꽃터널에 흩뿌리는 낙화의 장관도 함께 할 수가 있다.

그간에 벽암, 백암, 법훈, 만허, 용담 스님 등의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는 동안 고색창연한 자태와 웅장한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경남 하동의 쌍계사는 고운 모래가 금빛으로 반짝이는 섬진강을 벗 삼고, 웅대한 지리산 자락들이 넘실대는 풍광을 바라볼 수 있고 화개마을은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전라도 말씨의 이야기를 들었던 사람들이 어느 새 진한 경상도 억양의 말을 듣게되는 ‘언어문화의 국경선’으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