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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108산사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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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전등사(傳燈寺, 강화 정족산)
2017-11-01 18:24:28

강화도는 섬 자체가 우리나라 역사의 축소판으로 일컬어지고 있다. 선사 시재의 고인돌 유적부터 단군왕검의 얼이 담긴 마니산, 고려 때의 대몽항쟁과 팔만대장경 조성, 서양 세력과 처음으로 전투를 벌였던 병인양요에 이르기까지 강화도의 역사는 곧 한민족의 여가나 마찬가지였다.

 

전등사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吉祥面) 온수리 635번지 정족산성(鼎足山城) 안에 있는 대한불교 조계조 직할교구 사찰이다.

중부지방 전역의 물을 한데 모아 오는 한강과 임진강 그리고 예성강이 합해져 서해바다에서 만나는 물머리를 막고 있는 강화도, 이 섬은 예로부터 한반도의 중심부를 지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주목되었을 뿐만 아니라 단군의 부소(夫蘇), 부우(夫虞), 부여(夫餘) 세 왕자에게 각각 한 봉우리씩 맡아 쌓게 하였다는 삼랑성(三郎城)이 있는 민족의 성지이기도 하다.

 

강화도의 주봉을 이루는 마니산(摩尼山)이 있고, 그 한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길상면 온수리에 이르러 다시 세봉우리를 형성하였는데 이것이 정조산()이다. 전등사는 삼랑성의 동북쪽에 위치해 있다. 이 성의 동문은 암문이고 남문은 1977에 복원하였는데 이 문들이 전등사의 출입구로 사용되고 있다.

 

고구려 소수림왕 11년(381년)에 아도(阿道)화상이 개산(開山)하고 진종사(眞宗寺)라 이름 붙였다. 그 뒤 고려 원종 7년 (1266년)에 사승(寺僧)이 이절을 다시 창건하였다.

고려 충렬왕 8년(1282년)에 충렬왕 원비(元妃) 정화궁주(貞和宮主) 왕(王)씨가의 승려 인기(印奇)스님을 시켜 바다를 건너 송(宋)에 들어가서 대장경을 인쇄해 이절에 보관하게 했다. 부처님 앞에 불을 밝히는 옥등잔(玉燈盞)도 역시 정화궁주가 보시(布施)한 것이라고 했는데 옥등잔을 헌납함으로써 절 이름을 고쳐 전등사라 사액(賜額)하였다. 그 뒤 충숙왕 6년(1337년)과 충혜왕 2년(1341년) 이 절의 스님들이 중수하였다.

 

조선 선조 38년(1605년) 불이 나서 전체 건물으 반가량이 타버렸고, 광해군 6년(1614년) 12월 또 다시 불이 나서 나머지 건물이 모두 소실되었으나, 이듬해 4월 지경(志磬)스님 등이 중심이 되어 재건을 시작하여 1621년 옛 모습을 되찾았다.

 

전등사는 조선의 숭유억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향화(香火)가 그치지 않았던 가람이다. 조선 숙종 때인 1678년, 조선왕조실록을 전등사에 보관하기 시작하면서 전등사는 왕실 종찰로서 더욱 성장했다.

 

전등사는 호욱기도 도량으로 널리 알려져 창건 이래 나라의 역사를 움직였던 인사들이 꾸준하게 찾는 수도권 최고(最古)의 기도도량으로 손꼽힌다.

 

현재 전등사에는 대웅보전(보물 178호), 약사전(보물179호)을 비롯한 10동의 건물과, 11세기 중국 북송 때 만들어진 범종(보물393호), 순무천총양헌수승전비(유형문화재 26호), 지방문화재인 7호인 대조루(지방문화재 7호) 조선왕조실록과 왕실세보(王室世譜)를 보관했던 장사각지와 선원보각지, 나녀상, 열리지 않는 은행나무, 우는 나무 등 많은 고목이 있다. 이 바껭도 이 절에는 거대한 청동수조와 대웅전 안에서 불을 켜던 옥등이 있다.

근래에 들어와서는 서운(瑞雲), 장윤, 계성스님 등에 의해 주요전각에 대한 해체 및 수리작업과 중건이 자주 이루어지는 등 불사가 활발히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