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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108산사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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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 직지사(直指寺 , 김천 황악산)
2017-11-01 18:20:11

소백산맥(小白山脈)의 준령(峻嶺)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그 서쪽 추풍령(秋風嶺)에서 잠시 머물러 관문(關門)을 이루었고, 다시 서남쪽으로 웅장(雄壯)한 산세(山勢)를 유지하며 달려와 힘차게 솟아오른 황악산(黃嶽山) 동남쪽 산자수명(山紫水明) 한 곳에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直指寺)가 자리해 있다.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代項面) 황악산(黃嶽山)에 있는 사찰로 고구려의 아도(阿道)화상이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현재 사적비(寺蹟碑)가 허물어져 확실한 것은 알 수 없고, 신라 눌지왕 2년(418년)에 아도화상(阿道和尙)이 경북 구미시에 있는 도리사(桃李寺)와 함께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 후 선덕여왕 14년(645년)에 자장(慈藏)율사, 경순왕 4년(930년)에는 천묵(天默)대사가 중수하고, 고려 태조 19년(936년)에 능여(能如)조사가 고려 태조의 도움을 받아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거의 타버려 광해군 2년(1610년)에 복구에 들어가 60여 년 후 작업을 끝맺었다.

 

그 사명(寺名)을 직지(直指)라 함은 직지인심 견성성불(見性成佛)이라는 선종(禪宗)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었다 하며 또 일설에는 창건주(創建主) 아도 화상이 일선군(一善郡,善山) 냉산(冷山)에 도리사를 건립하고 멀리 김천의 황악산을 가리키면서 저 산 아래도 절을 지을 길상지지(吉祥之地)가 있다고 하였으므로 하여 직지사(直指寺)라 이름했다는 전설(傳說)도 있다. 또는 고려의 능여 화상이 직지사를 중창할 때 자를 사용하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지(測地)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란 설도 있다.

 

조선시대(朝鮮時代)의 직지사는 제2대 정종원년(,1339년) 정종의 어태(御胎)를 절의 북봉(北峰)에 봉안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였고, 이로 인하여 조선시대에도 줄곧 사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선 중기에는 사명대사(四溟大師)가 본사(本寺)에 출가(出家)하여 신묵대사(信默大師)의 제자가 된 것이 유명하거니와, 성종 19년(1488년) 학조(學祖)스님이 주지로 있으면서 중창불사를 이루었으며 벽계 정심선사가 조선조의 법난 때 이곳에 칩거하여 한국 선종의 대맥을 이었다.

선조 29년(1576년) 왜적의 방화로 모든 전각과 당우가 소실된 것을 광해군 2년(1610년) 인수와 명례스님이 재건했다. 이로 인하여 직지사는 배불(排佛)의 그늘 속에서도 사운(寺運)을 유지할 수 있었다.

경내에는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 319호), 대웅전 앞 3층 석탑(보물 606호), 비로전 앞 3층석탑(보물 607호), 대웅전 삼존불탱화 3폭(보물 670호), 청풍료(淸風寮) 앞 3층석탑(보물 1186호), 금동자물쇄(보물 재1141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현재는 국내 25본산(本山) 가운데 하나로서 제8교구(第八敎區) 본사(本寺)이며 소속 말사(末寺) 54개 사찰에 이르고 있다. 관할 구역은 4개시, 1개군으로 김천, 구미, 상주, 문경시와 예천군이다.

이렇게 본사는 역대의 중건(重建), 중수(重修)를 거치면서 천 수백년 법등(法燈)을 이어 오다가 최근 4반세기 동안 창사 이래 최대의 불사를 일으키어 그 면모가 일신되었으니 이는 오로지 1958년 본사의 주지로 부임한 녹원화상(綠園和尙)에 의한 중흥불사(中興佛事)의 공덕에 힘입은 바며 그 후 법등, 혜창, 법성, 자광, 성웅스님이 주석하며 경북의 중심 사찰로 법등을 밝혀오고 있다.

 

이와 함께 사적기(事蹟記)에 따라 모든 불전(佛殿)과 당우(堂宇)를 중건, 중수함은 물론 국제회의와 대법회를 위한 본사 최대의 건물인 만덕전(萬德殿)을 건립하는 한편 4기(基)의 신라시대 고탑(故塔)을 이건(移建)하였으니 이는 창건 이래 최대의 불사(佛事)이며 일대변혁(一大變革)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절의 위치가 산곡(山谷)이면서도 높지 아니하고, 야지(野地)인 듯 하면서도 산사(山寺)의 풍취(風趣)가 항상 흘러 넘쳐서 4계절 내내 도량을 참배하는 신남신녀(信男信女)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