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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108산사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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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화엄사(華嚴寺, 구례 지리산)
2017-11-01 18:00:33

 

백두산의 정기가 남으로 흘러 내려오다 다시 솟았다 하여 두류산이라 불리는 민족의 영산 지리산. 이 지리산에 여의주가 하나 있으니 그 곳이 바로 화엄사다.

전남 구례군 마산면(馬山面) 황전리(黃田里) 지리산 노고단(老姑壇) 서쪽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이다. 창건에 관한 상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사적기(寺蹟記)》에 따르면 백제성왕

 

22년(544년)에 인도 승려 연기(緣起)조사가 세웠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시대는 분명치 않으나 연기(緣起)조사라는 승려가 세웠다고만 전하고 있다. 그 후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장율사에 의해 증축되었고 신라 문무왕 10년(670년)에는 의상대사(義湘大師)가 황엄10찰()을 불법 전파의 도량으로 삼으면서 이 화엄사를 중수하였다.

그리고 장육전(丈六殿)을 짓고 그 벽에 화엄경을 돌에 새긴 석경(石經)을 둘렀다고 하는데, 이때 비로소 화엄경 전래의 모태를 이루었다.

 

사지(寺誌)에서는 당시의 화엄사는 가람 8원(院) 81암(庵) 규모의 대사찰로 이른바 화엄 불국세계(佛國世界)를 이루었다고 한다.

 

신라말 헌강왕 1년(875년)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중수하였고 고려시대에 광종의 어명을 받은 홍경선사에 의하여 계속적으로 중수 및 보수가 이루어졌고, 문종대(1047~1083)에도 대대적인 중수가 있었으며 의상대사의 덕을 흠모한 대각국사가 화엄사에 주석했던 때도 바로 이 때였다.

 

그 후 화엄사는 인종(1126~1146)때 정인왕사(定仁王師)에 의해 중수되었고 고려 명종 2년(1172년)에는 도선구사비가 건립되었고 충렬왕(1313~1330)때 원소암(圓炤庵)이 중건되었다. 조선초인 세종 6년(1462년)에 선종대본산으로 승격되었다.

 

그러나 임진왜란의 병화로 8가람 81암자의 모든 당우와 보물들이 일시에 불타버렸고 인조 8년(1699년)에 벽암선사와 그 문도들에 크게 중수를 시작하여 7년 만에 몇몇 건물을 건립, 폐허된 화엄사를 다시 일으켰고, 그 뜻을 이어받아 계파(桂波)선사는 각황전을 완공하였다.

 

지금 볼 수 있는 화엄사의 가람배치는 효종 원년(1649)에 화엄사가 다시 선종대가람으로 승격된 직후 계파선사에 의한 장육전 중건(1699)부터이다. 장육전이 각황전으로 중건되자 숙종은 친히 가고항전이라 사액하였다.

 

범종은 왜군이 일본으로 가져가려고 섬진강을 건너다가 배가 전복되어 강에 빠졌다고 전한다. 장육전을 두르고 있던 석경은 파편이 되어 돌무더기로 쌓여져 오다가 현재는 각황전(覺皇殿)안에 일부가 보관되고 있다. 각황전 옆으로 108계단을 오르면 이 일대를 '효대'라고 하는데, 경주 불국사의 다보탑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4사자삼층석탑(국보 제35호)이 나온다.

 

대개의 절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가람을 배치하지만, 이 절은 각황전이 중심을 이루어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을 주불(主佛)로 공양한다. 화엄사가 오늘의 대화엄사로 발전하기가지는 도광(導光)선사의 중창원력에 의해서이다. 도광선사는 대웅전 및 각 요사를 중수하는 등 퇴락한 사찰의 면모를 일신하는 데 큰 업적을 남겼다.

 

주요 문화재로는 각황전 앞 석등(국보 제12호), 사사자 삼층석탑(국보 제35호), 각황전(국보 제67호), 괘불탱(국보 제301호), 동,서 오층석탑(보물 제132호, 133호), 보제루(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49호), 구층암 석등(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32호)등 많은 문화재가 있으며 부속 암자로는 구층암(九層庵) · 금정암(金井庵) · 지장암(地藏庵) · 봉천암 등이 있는데, 금정암의 작설차와 지장암의 약수는 연인들에게 산사를 찾는 또 다른 작은 감동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