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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오와 미움’이 섞이지 않은 참된 사랑을 하라
108산사 조회수:1172
2013-11-14 11:46:12
사랑하는 사람과 만나지 말라. 미운사람과도 만나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 괴롭고 미운 사람은 만나서 괴롭다. -법구경-

부처님이 사밧티의 기원정사에 아난다와 함께 있을 때였다. 한 비구니가 아난존자를 찾아와서 이렇게 간청을 했다.

“지금 어떤 비구니가 병이 들어 앓고 있습니다. 그 비구니는 아난존자에게 공양을 올리고 설법을 듣고자 하오니 부디 한 번 찾아 오셔서 설법을 전해 주십시오.”

아난존자는 다음날 발우를 들고 그 비구니가 있는 거처를 찾아갔다. 그 비구니는 멀리서 아난존자가 걸어오는 것을 보자 일부러 앞가슴을 풀어 헤치고 알몸을 드러낸 채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사실 그 비구니의 병은 아난존자를 연모해서 생긴 상사병이었다.
이를 눈치 챈 아난존자는 얼른 자신의 몸에 든 감관(感官)의 문을 닫고 그 비구니에게 더 이상 다가가지 않았다. 그 사실을 스스로 알아챈 비구니는 무안해 다시 방바닥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고치고 아난존자 앞으로 다가가 무릎을 꿇었다. 그제야 아난존자는 그녀를 가엾게 여겨 설법을 시작했다.

“그대여, 이 몸은 세상에 나서 음식과 교만으로 자라났으며, 탐욕과 음욕으로 자라난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제자들은 몸을 보존하기 위해 음식을 먹고 목마른 병을 고치기 위해 항상 깨끗한 범행(梵行)을 닦아야 합니다. 이것은 마치 수레를 끄는 상인이 오직 길을 가기 위해 바퀴에 기름칠을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는 그 분수를 헤아려 스스로 집착과 애착을 없애야만 하옵니다. 또한 마음에 교만과 애욕과 탐욕이 일어날 때는 스스로 모든 번뇌가 다하여 해탈을 했다고 생각을 해야 하며 이제는 다시 윤회의 삶을 살지 않아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나는 아직 여기서 벗어나지 못하는가를 자성(自省)해야만 합니다. 만약 그대가 이렇게 생각을 한다면 마음의 병에서 벗어나 마침내 식욕과 교만과 탐애와 음욕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난존자의 설법을 들은 비구니는 깊게 참회를 했다.
“저는 어리석고 착하지 못해 아난존자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이제 아난존자님 앞에서 모든 것을 고백하고 참회를 하오니 부디 저를 가엾게 여겨 주소서.”

잡아함의 <비구니경>에 있는 경전이다.

사실 남녀의 사랑은 저지할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다. 누구도 이 본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으며 또한 거역할 수도 없다. 동서고금 많은 선인들이 이 사랑을 논해왔지만 그것은 한갓 개인적인 사견일 뿐 정의할 수도 없다. 우리는 아난존자의 행동에서 하나의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것은 감관의 문이다. 인간에게는 오욕(五慾)의 문이 있다.

이 중에서도 가장 강한 것이 바로 감관의 문 앞에 놓인 음욕(淫慾)이다.
아난존자는 용모가 준수하고 매우 다정다감한 성격의 소유자여서 많은 여자들이 그에게 사랑을 느껴 유혹의 손길을 내밀곤 했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사건은 주술사의 딸 마퉁가의 유혹이었는데, 그는 아난다를 연모하다가 비구니가 되었다.

이 경전에서 나오는 마퉁가가 그 비구니인지는 알 수가 없다. 그러나 아난존자가 알몸으로 유혹하는 여인을 꾸짖기는커녕 오히려 점잖게 타일러 설득하는 것은 그의 결백한 성품을 단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간과할 수 없는 하나의 이치를 발견할 수 있다.

사실 부처님은 남녀의 애욕을 끊으라고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만나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의 뒷면에는 ‘헌신적인 사랑을 할 수 없다면 사랑을 하지 말라’는 깊은 뜻이 품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럼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진실한 사랑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증오와 미움’이 섞이지 않은 진실로 참된 사랑을 뜻한다. 그러므로 참된 사랑에는 어떤 대가를 요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