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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차 월악산 덕주사
108산사 조회수:932
2013-04-23 11:46:37
‘108산사순례기도회’ 제79차 산사순례 법회가 월악산 덕주사에서 여법하게 봉행되었다. 법회기간 동안 이틀간은 날씨가 화창했고 마지막 날은 꽃비가 추적추적 내려 대지를 한없이 적셨다.

회원들은 월악산 송계계곡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소리를 들으며 송계팔경의 하나로 이름난 푸른 물빛이 감도는 수경대(水鏡臺)를 거쳐 산길을 걸어서 올랐다. 봄빛이 완연하게 흐드러진 산자락 곳곳에는 눈을 즐겁게 하는 진달래와 철쭉, 이름 모를 풀꽃들이 잔득 피어 있었다.

“신라 천년사직 왕건에게 내어준 경순왕, 마지막 덕주 공주 그 망국의 한 달래며, 마애불 새기고 신라재건 영원한 곳, 덕주 공주 자신모습 새긴 마애불, 투박하면서도 웅장하고 중창불사 도왔던 소, 죽은 자리 앙증맞은 우공탑 세워 인도환생 발원 하누나”

나는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 책속에 담긴 덕주사의 시를 천천히 음미하며 산사로 향했다. 웅장한 일주문 앞에 이르자 주지 원경스님과 대중들이 부처님의 미소를 머금고 우리들을 마중 나와 있었다. 나와 주지 스님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황금향로를 들고 천천히 경내로 들어갔다. 뒤를 따르는 회원들의 석가모니불 염불소리가 월악산 곳곳에 아련하게 퍼졌다.

덕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5교구본사 법주사의 말사로, 신라(진평왕 587년) 때 창건되었다. 신라의 마지막 공주인 덕주 공주가 마의태자와 함께 금강산으로 가던 도중 마애불이 있는 이곳에 머물러 절을 세우고 마의태자를 그리며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고색창연했던 상덕주사는 한국전쟁으로 소실되고 하덕주사만 남아 있는데 이곳이 바로 오늘날의 덕주사이다.

회원들은 삼삼오오 자리를 잡고 기도에 들어갔다. 스님의 염불소리에 맞춰 천수경 독송이 시작되었다. 염불이 끝나자 곧 이어 나를 찾는 입정시간을 가진 뒤 ‘108참회기도’에 들어갔다. 회원들은 한 구절 한 구절, 108참회문을 간절하게 마음속으로 읽었다.

“제가 살면서 나와 남을 위해 산목숨을 죽이지 않겠나이다. 제가 살면서 남의 것은 무엇이든지 훔치지 않겠나이다. 제가 살면서 나와 남을 위해 사음(邪淫)을 하지 않겠나이다. 제가 살면서 나와 남을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겠나이다. 제가 살면서 사람과 사람 간에 이간질을 하지 않겠나이다.”(나를 찾는 108 참회문 26~30절)

그렇다. 몸과 말, 뜻으로 짓는 십선(十善)의 청정한 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들은 108산사순례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법문을 이어나갔다. “여러분, 이제 완연한 봄입니다. 산사순례에 오니 얼마나 좋습니까. 무엇보다도 도심에서 얻을 수 없는 자연의 풍광(風光)들을 이렇게 몸으로 느끼고 눈으로 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또한 산사순례에 오는 날은 인류의 스승이신 부처님의 참뜻을 마음속으로 새기고 정법(正法)을 지표로 삼아 그 깨달음을 얻어가는 더없이 좋고 기쁜 날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기도하는 생활을 실천하며 좋은 날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주지 원경 스님은 “선묵혜자 스님의 원력으로 108가지 봉사활동을 실천하며 오늘날 한국불교 신행사의 큰 획을 긋고 있는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원들이 덕주사를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덕주사는 월악산이 품고 있는 아름다운 사찰로서 이곳의 모든 기(氣)를 안고 돌아가셔서 하시는 일이 원만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삼일간의 법회 동안 우리 108산사순례기도회는 농촌사랑 직거래장터를 열었다. 다문화가정 인연맺기와 초코파이 보시, 소년소녀가장 장학금수여, 효행상 시상, 108약사여래보시금 등 다양한 행사를 펼쳤다. 마지막 날 주지 원경스님이 북녘동포돕기 300석 공양미 모금에 40kg 27가마를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