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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3차 호거산 운문사
108산사 조회수:1073
2013-02-13 11:46:31
108순례회원 발길 닿는 곳이 곧 聖地,


남도 천리 청도 호거산 운문사 산문입구로 들어가는 길, 하늘은 티 없이 맑았다. 붉은 단풍잎과 노란 은행나무, 천지사방 주렁주렁 매달린 연분홍빛 감들은 삼수갑산에 한 폭 아름다운 수(繡)를 놓고 있었다. 마치 절정의 가을이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원들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 듯 했다. 108산사순례를 떠나지 않고서는 결코 볼 수 없는 가을의 향기와 향취가 산자락 곳곳마다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경내에 들어서자, 산이 절을 품었는지 절이 산을 품었는지 모를 산사의 풍경들이 발목을 한껏 끌어 당겼다. 그 어떤 말과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운문사의 가을이 한 폭 풍경화처럼 우리 앞에 그림처럼 앉아 있었던 것이다. 회원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잠시 기도조차 잊은 듯 오랜 수령을 자랑하는 처진 소나무인 반송(盤松) 앞에서 연신 사진을 찍었다. 운문사는 한국제일의 비구니 승가답게 웅장하면서도 단아하게 순례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 선묵 혜자스님과 운문사 주지 일진 스님은 부처님의 향로를 들고 회원들과 함께 대웅보전을 향해 나아갔다. 걸음을 내딛자 어디선가 법륜이 구르는 듯 맑은 새소리가 경내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는 마치 비구니 스님들의 낭랑한 독경소리처럼 맑고 고왔다. 청정무구 그 자체였다.

10월 18일부터 20일까지 경북 청도 호거산 운문사에서 봉행된 제73차 순례법회에 동참한 회원들은 곧 자리를 잡고 『천수경』 독경과 사경, 나를 찾는 시간인 입정에 들어갔다. 눈을 지긋하게 감고 두 손을 합장하자 호거산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이 가볍게 귓가에 와 닿았다. 그 바람소리는 “그대들은 마침 운문사에 잘 왔다.”는 부처님의 법언(法言)으로 들렸다. 운문사의 바람소리, 나무와 전각은 물론 수각(水閣)에서 졸졸 흘러나오는 물소리는 다름 아닌 부처님의 그윽한 법언이었던 것이다.

나를 찾는 108참회문을 읽으며 곧 참회의 절 기도에 들어갔다. ‘일심으로 정진하여 부처님의 가피가 상서로운 빛처럼 사바에 비추기를 기도하겠나이다. 내 이웃이 모두 안락하도록 지극정성으로 발원하나이다. 우리나라가 나날이 화합발전하도록 지극정성으로 발원하나이다. 온 세계가 다투지 않고 평화롭기를 지극정성으로 발원하나이다. 이 세상 유정무정 모든 삼라만상이 평온하기를 지극정성으로 발원하나이다.’ (나를 찾는 108기도문 95~98절)

정말, 그렇고 정말 그렇다. 우리의 기도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가족은 물론, 이웃과 사회 그리고 국가 더 나아가 이 세상의 유정무정 삼라만상의 평화를 기원했다. 때문에 일흔 두 번의 기나긴 순례를 하는 동안 부처님께서는 일심으로 기도하는 나와 보현행원들에게 일심광명 무지개를 가피로서 환하게 보여주셨는지도 모른다.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원들은 그 무지개를 볼 때마다 환희심이 일어났다. 그 가피가 우리가 지금껏 무사히 회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원력은 그냥 세워지는 것이 아니다. 간절한 기도에 의해 원력도 세워진다.

대강백으로 널리 알려지신 일진 스님의 감로법문이 이어졌다. “연꽃은 곧 부처님입니다. 오늘 연분홍빛 기도복을 입고 들어오시는 순례회원들을 보자 저는 수천의 부처님이 멀리서 걸어오시는 듯 해서 마음속에서 형언할 수 없는 환희심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바로 부처님입니다. 제가 42년 동안 이 운문사에서 수행을 하고 있었지만 이토록 많은 보현행원들이 오신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천리를 마다하지 않고 걷고 걸으며 기도하며 농촌을 사랑하고 어려운 이웃과 소녀소년 가장을 돕고 장학금을 주고 또한 장병사랑을 실천하시는 여러분이야 말로 부처님입니다. 선묵 혜자스님은 여러분들을 이끄는 이 땅의 선지식이십니다. 『자경문』에 보면 ‘삼일수심(三日修心) 천재보(千載寶) 백년탑물(百年貪物) 일조진(一朝塵)’ 이라는 최고의 경구가 있습니다. 삼일동안 닦은 마음은 천 년의 보배가 되고, 백 년 동안 탐한 재물은 하루아침에 티끌이 된다는 말씀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108산사순례는 3일 간 법회를 하니 천년의 보배와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보시도 인연이 닿아야만 할 수 있습니다. 성지란 따로 있는 곳이 아닙니다. 108산사순례기도회의 발길이 닿는 그곳이 곧 성지입니다. 이 운문사의 가을은 세상 어디에서도 맛 볼 수 없는 무공해 햇살입니다. 저는 오늘 비타민 C가 가득한 가을 햇살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정말 가슴을 울리는 일진 스님의 감로법문이었다. 모든 순례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회원들은 농특산물 직거래 장터에 들렀다. 햇살고운 가을이 길마다 넘쳐나듯 씨 없는 감인 반시와 대추, 사과, 버섯 등 특산물을 구입하며 농촌사랑을 실천했다.
참으로 즐거운 순례 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