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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108산사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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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25일(토), 108산사 1기 2차 순례 장성 백양사에서
108산사 조회수:308
2017-02-20 11:48:11
선묵혜자 스님과 마음으로 찾아가는 108산사순례기도회는 오는 25 전남 장성 백양사에서 1기 2차 순례를 봉행한다.

백양사는 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이고, 일제강점기 당시 30본산의 하나였던 명찰이다. 유구한 역사와 사찰 주변의 빼어난 경관으로 인해 이름이 높다. 백양사의 창건과 창건주에 대한 내용은 1911년 조선총독부 내무부 지방 분국에서 편찬한 ‘조선사찰사료(朝鮮寺刹史料)’에 나온다. 이 기록은 정도전이 고려 우왕 3년(1377)에 지은 ‘백암산 정토사 교루기’와 목은 이색이 우왕 7년(1381)에 지은 ‘백암산 정토사 쌍계루기’를 근거로 하고 있다.

이 자료에 따르면 백암산은 장성군 북쪽 30리 지점에 있는데, 암석이 모두 흰색이어서 ‘백암(白巖)’이라 했다. 석벽은 깎아지른 듯 험하고 산봉우리는 웅장한 모습이 명승지가 될 만해 신라 때 어떤 이승(異僧)이 절을 짓고 살면서 이름을 백암사(白巖寺)라 했다. 중국 송나라 경우 연간(1034~1037)에 이르러 ‘정토선원(淨土禪院)’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그 문도인 중연 선사가 이를 이어 방장실, 요사 등 80여 칸을 다시 지었다. 중연 선사의 문도에게 차례로 전해 오다가 일린(一麟) 스님이 법을 이었다.

백암사는 고려 덕종 3년(1034년) 중연선사가 중창하면서 정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선조7년 환양선사가 백양사라 이름을 고쳐 불렀다. 백양사로 사찰 이름을 바꾼 연유는 하얀 양을 제도한데서 유래한다.

조선 선조 때 환양선사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하는데 수많은 사람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법회가 3일째 되던 날 하얀 양이 내려와 스님의 설법을 들었고, 7일간 계속되는 법회가 끝난 날 밤 스님의 꿈에 흰 양이 나타나 ‘저는 천상에서 죄를 짓고 축생의 몸을 받았는데 이제 스님의 설법을 듣고 업장 소멸하여 다시 천국으로 환생하여 가게 되었다.’고 절을 했다. 이튿날 영천암 아래에 흰 양이 죽어 있었으며, 그 이후 절 이름을 백양사라고 불렀다고 한다.

백양사는 1917넌 만암 대종사가 30여 년 간 주석하면서 불사에 주력했다. 아울러 소실된 강원을 다시 개설해 600년 강원 전통을 이으며 많은 인재를 길러냈다. 조계종 5대 종정을 지낸 서옹 스님은 2003년 열반에 들기 전 까지 운문암 운문선원에 주석 하면서 눈 푸른 납자를 제접하며 후진 양성에 전력을 쏟았다. 또 서옹 스님은 ‘참사람’ 운동을 펼치며 ‘참사람’ 참선 수련회를 통해 백양사를 스님만의 참선 수행 도량이 아닌 재가자들의 참선수행 도량으로 문을 개방하기도 했다.

백양사는 예로부터 훌륭한 선지식이 계속 배출됐다. 백양사의 총림선원인 운문암은 ‘북 마하연 남 운문‘이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남한에서 가장 으뜸가는 참선 도량으로 손꼽힌다. 고려시대 각진국사를 비롯해 조선시대 소요ㆍ태능ㆍ편양ㆍ진묵ㆍ연담 스님, 조선 말 불교를 이끌었던 백파ㆍ학명 스님 그리고 용성ㆍ인곡ㆍ석전ㆍ만암ㆍ고암 스님 등의 고승들이 암울했던 상주하며 수행, 조계법통을 이어온 수행 근본도량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백양사 산내 암자로는 참선수행 도량인 운문암과 물외암, 금강대, 청량원, 비구니 선원인 천진암이 있고 기도 도량으로 영험있는 약사암과 영천굴이, 서편에 계곡과 산수가 울창하고 빼어난 청류암과 홍련암이 자리하고 있다.

백양사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갑오농민개혁 때 대중스님들이 역사와 민중의 고난에 함께해왔다. 또 백양사를 중창한 만암 스님은 민족교육의 산실인 광성의숙을 설립했고, 1930년 중앙불교전문학교(동국대 전신)을 설립했다. 해방 후에는 광주 정광중고등학교를 세워 사회교육에도 적극 참여하고 있다.

백양사는 조계종 종정을 5명이나 배출한데서 알 수 있듯이 수행가풍이 드높은 도량이다. 일제 때 2대 교정을 지낸 환응ㆍ조계종 초대 종정 만암ㆍ태고종 초대 종정 묵담ㆍ조계종 5대 종정 서옹 스님 등이다. 사세를 키운 백양사는 선원ㆍ강원ㆍ율원 등을 갖추게 되었으며, 1996년 3월 해인사ㆍ통도사ㆍ송광사ㆍ수덕사에 이어 5번째 조계종 총림으로 승격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