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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송광사(松廣寺, 순천 조계산)
2018-11-29 17:34:23

전라남도 순천시 송광면 조계산(曹溪山) 서쪽자락에 새둥지처럼 아늑하게 자리 잡고 있다. 한국의 삼보(三寶) 사찰 가운데 승보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21교구 본사이다.

《송광사지》에 따르면 신라 말기에 혜린(慧璘)국사가 마땅한 절을 찾던 중, 이곳에 이르러 산 이름을 송광(松廣)이라 하고 절 이름을 길상(吉祥)이라 하였는데, 사찰의 규모는 100여 칸에 지나지 않았고 승려의 수효도 겨우 30~40명을 넘지 못하였다.

처음에 이렇게 창건된 뒤 고려 인종 3년(1125) 석조스님이 대찰을 세울 원력을 실현하지 못하고 입적하자, 명종 27년(1197) 승려 수우선사가 사우(寺宇) 건설을 시작하였다. 3년이 지난 뒤 보조국사 지눌이 정혜사(定慧社)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선사(修禪社)라 칭하고, 교(敎)와 선(禪)을 닦기 시작하면서 대찰로 중건하였다.

송광사를 안고 있는 조계산은 처음에는 송광산이라고 했는데, 보조국사 이후 조계종의 중흥도량이 되면서부터 조계산이라고 고쳐 불렀다. 그 뒤 보조국사의 법맥을 진각(眞覺)국사가 이어받아 중창한 때부터 조선초기에 이르기까지, 약 180년 동안 16명의 국사를 배출하면서 승보사찰(僧寶寺刹)의 지위를 굳혔다.

경내에는 이들 16국사 진영(眞影)을 봉안한 국사전이 따로 있다. 수선사를 언제 송광사로 개칭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임진왜란 때 일부가 소실된 뒤 한동안 폐사 상태였는데, 뒤에 응선선사를 비롯한 스님들이 복원하고 부휴선사를 모셔 다시 가람의 면모를 갖추었다.

그러나 조선 헌종 8년(1842) 큰 화재가 일어나 모든 건물이 불타 없어지고, 삼존불·지장보살상·금기·대종 및 기타 보물과 《화엄경》장판(藏板) 약간 만을 건졌다.

1922년부터 1928년까지 설월·율암스님이 퇴락한 건물들을 중수하고, 1943~1956년에 스님과 신도의 노력으로 차례로 복원하여 옛 모습을 되찾았다. 1948년 여수순천사건과 한국전쟁으로 사찰의 중심부가 불탔다. 그 후 승려 취봉·금당스님의 노력으로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을 복구하였다.

1969년 조계총림이 발족하면서 방장 구산(九山)스님께서는 승보종찰 다운 도량을 가꾸어야 된다는 원력에 사부대중이 뜻을 함께 했다. 1983년부터 1990년까지 8년여에 걸쳐 대웅전을 비롯하여 30여 동의전각과 건물을 새로 짓고 중수하여 도량의 모습을 일신하여 오늘과 같은 승보종찰의 모습을 갖추었다.

암자로는 광원암·천자암·감로암·부도암·불일암·판와암과 근래에 건립한 오도암·탑전 등이 있고, 전국에 걸쳐 말사와 수련원, 성보보수교습원 등의 부설기관이 있다.

또 많은 사찰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로, 목조삼존불감(국보제42호), 고려고종제서(국보 제43호), 국사전(국보 제56호)을 비롯해 대반열반경소(보물 제90호), 경질(보물 제134호), 경패(보물 제175호), 금동요령(보물 제179호), 묘법연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 삼현원찬과문(보물 제204호), 대승아비달마잡집론소(보물 제205호), 묘법연화경찬술(보물 제206호), 금강반야경소개현초(보물 제207호), 하사당(보물제263호), 약사전(보물 제302호), 영산전(보물 제303호), 《고려문서》즉 노비첩(奴婢帖), 수선사형지기(보물 제572호)가 있다. 이 밖에도 능견난사(能見難思) 등 지방문화재 8점이 있으며, 추사 김정희의 서첩, 영조의 어필, 흥선대원군의 난초족자 등 많은 문화재가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또한 인근 순천시 승주읍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본시 신목이었던 이팝나무(제36호)와 천자암의 용틀임하듯이 비비꼬인 곱향나무인 쌍향수(제88호)가 있는데, 이 두 천연기념물에는 모두 다 신기한 전설이 전해져 온다.

송광(松廣)이라는 이름에는 몇가지 인연설이 있다. 그 첫째는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셔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펼 절이라는 뜻이다. 곧‘송(松)’은‘十八(木)+公’을 가리키는 글자로 18명의 큰스님을 뜻하고,‘ 광(廣)’은 불법을 널리 펴는 것을 가리켜서 18명의 큰스님들이 나서 불법을 크게 펼 절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보조국사 지눌(知訥)스님과 연관된 인연설이다. 곧 스님께서 정혜결사를 옮기기 위해 터를 잡으실 때 모후산에서 나무로 깍은 솔개를 날렸더니, 지금의 국사전 뒷등에 떨어져 앉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뒷등의 이름을 치락대(솔개가 내려앉은 대)라 불렀다 한다. 이 전설을 토대로 육당 최남선은 송광의 뜻을 솔갱이(솔개의 사투리)라 하여 송광사를 솔갱이 절이라 풀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찍부터 산에 소나무(솔갱이)가 많아‘솔메’라 불렀고, 그에 유래해서 송광산이라 했으며 산 이름이 절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