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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정암사(淨巖寺, 정선 태백산)
2018-11-29 17:33:50

강원도 정선군 고한읍 고한리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 말사이다. 자장(慈藏)율사가 신라 선덕여왕 5년(636) 당나라에 들어가 문수도량인 산시성 운제사(雲際寺)에서 21일동안 기도를 올려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석가모니 부처님의 신보(神寶)를 얻어 귀국한 후 전국 각지 5곳에 이를 나누어 모셨다. 그 가운데 한 곳이 정암사의 옛 이름인 갈래사(葛來寺)였다. 갈래사란 사명(寺名)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이 절의 창건설화와 깊은 관계가 있다.

《갈래사사적기》에 따르면, 신라시대 대국통을 지낸 자장율사는 말년에 강릉에 있는 수다사(水多寺)란 절에 머물고 있었다. 하루는 꿈에 이상하게 생긴 스님이 나타나“내일 대송정에서 보자.”고 했다. 스님이 대송정으로 갔더니, 문수보살이 꿈에 나타나“태백산 갈반지(葛蟠地)에서 만나자.”고 한 후 사라졌다. 스님은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큰 구렁이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이곳이 바로 그곳”이라며 석남원(石南院)을 지었다.

이곳이 바로 갈래사라는 것이다. 신보(神寶)는 석가모니 정골사리(頂骨舍利)와 가사·염주·패엽경 등인데, 지금도 사찰 뒤편 태백산에 남아 있는 수마노탑(水瑪瑙塔, 보물 제410호)에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갈래사라는 사명에 얽힌 또 다른 설화가 있다. 자장율사는 처음에는 사북에 있는 불소(佛沼) 위쪽에 사리탑을 세우려고 했다. 그러나 탑을 쌓으면 자꾸 무너져서 기도를 했더니, 하룻밤 사이에 칡넝쿨 세 갈래가 눈 위로 뻗어나가 지금의 수마노탑과 적멸보궁 그리고 요사채가 있는 곳에 멈추었다.

스님은 이곳이 바로 절과 탑을 세울 곳이라 하여 절을 짓고 이름을 갈래사라 하였다는 것이다. 갈래사는 창건과 함께 세 개의 보탑이 세워졌다고 한다. 북쪽 금봉대에는 금탑, 남쪽 은대봉에는 은탑, 가운데 수마노탑을 세웠다고 한다. 이 가운데 수마노탑은 사람이 쌓은 탑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금탑과 은탑은 법력(法力)으로 지은 것이라서 물욕이 많은 중생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고 전해진다.

정암사는 조선 숙종 39년(1713) 중수했다. 그런데 낙뢰로 부서져 자인·일종·천밀 등 세 분의 스님이 합심하여 수마노탑을 중수했다. 그러나 그 해 8월 벼락으로 파손되자 6년 뒤인 1719년 천밀스님이 다시 중수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 뒤 정조 12년(1788) 취암·성우 두 스님이 적멸보궁과 탑을 중수했으며, 철종 9년(1858) 해월과 대규 두 스님이 다시 원력을 발해 보궁과 탑을 중수했다.

근년에 들어서는 1919년 보룡화상이 중창불사를 했고, 지금까지 많은 스님과 사부대중의 원력으로 당우를 고쳐 적멸도량으로서 면모를 갖추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근래에 많은 스님들이 다시 두 세 차례 중건하였다. 이 사찰에는 천연기념물 제73호인 열목어 서식지도 있다.

현재는 수마노탑(보물 제410호)만 남아 있다. 이 수마노탑은 천의봉줄기 서쪽 산 중턱에 정암사 도량을 굽어보며 우뚝 솟아 있는데, 정암사의 상징이자 대표하는 7층(높이 9m)의 탑이다.

모전석재(模塼石材)를 이용한 이 탑에는 부처님 진신사리가 안치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로인해 정암사가 적멸보궁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고, 다른 적멸보궁과 함께 출가 수행자와 재가 불자의 기도순례지이며 정신적 귀의처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