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명

전국53기도도량

Home > 순례안내 > 전국53기도도량

게시글 검색
11. 화암사(禾巖寺, 고성 금강산)
2018-11-29 17:32:01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 말사이다.

신라 혜공왕 5년(769) 우리나라에 참회불교를 정착시킨 법상종 개조 진표(眞表)율사에 의해 창건됐다. 진표율사는 금강산의 동쪽에 발연사를, 서쪽에는 장안사를, 그리고 남쪽에 화암사를 창건해 금강산을 중심으로 불국토를 장엄하고자 했다.

진표율사는 이곳에서 수많은 대중에게《화엄경》을 설했다. 이를 배운 제자 1백 명 가운데 31명이 어느 날 하늘로 올라가고 나머지 69명도 무상대도(無上大道)를 얻었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이때 사찰 이름은 화엄사(華嚴寺)였다. 진표율사가《화엄경》을 설하여 많은 중생을 제도하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또한 진표율사는 이곳에서 미륵보살의 현신을 친견하고 그 자리에 지장암을 창건, 화엄사의 부속암자로 삼았다.

화엄사(華嚴寺)라는 절 이름이 공식적으로 화암사(禾巖寺)로 바뀐 때는 1912년 31본산 체제로 접어 들면서이다. 건봉사의 말사가 되면서 이전부터 사용되어 온 화암사란 명칭을 공식으로 쓰기 시작한 것이다.

절 이름이 화암사로 바뀌게 된 것과 관련된 전설도 전해진다. 화암사 남쪽 3백미터 지점에 우뚝 솟은 왕관모양의 바위는 모양이 워낙 빼어나 빼어날 수(秀)자를 써서 수암(秀巖)이라 불린다. 진표율사를 비롯한 역대 고승들이 이 바위 위에서 좌선 수도했다고 전해지며, 지금도 스님, 신도들이 찾는 기도처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화암사는 여러 번 중창을 거듭하였다. 특히 정조 18년(1794) 이루어진 중창은 화암사의 사격을 증명해 주는 큰 불사였다. 이 불사는 도한(道閑)스님의 기도에 의해 이루어졌다. 도한 스님은 이때 약사전에서 나라를 위한 기도를 주야 3·7일 동안 올렸는데, 기도가 끝나자 방광이 뻗쳐 그 빛이 궁궐의 뜰까지 이르렀다고 한다.

이에 정조 임금은 제조상궁 최 씨를 이 절에 파견하여 도한스님을 궁궐로 데려오도록 하였다. 스님으로부터 경위를 들은 정조는 크게 감격하여 화암사를 가순궁(嘉順宮)의 원당으로 삼고 요사채를 크게 지어주었다. 그리고 2년 뒤에는 미타암 화응전을 정조의 원당으로 정하여 관음보살상과 정조의 친필병풍 8폭 등을 하사하고 사방금표를 정해주었다. 이처럼 화암사는 한때 왕의 원당으로 지정될 만큼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기도 하였다.

조선 인조 1년(1623) 소실된 것을 1625년 중건하였다. 고종 1년(1864) 수바위 아래에 옮겨 중건한 뒤 바위의 이름을 따서 수암사(穗岩寺)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1912년 다시 지금의 이름 화암사로 고쳤다. 1915년에 화재로 중건하였고 한국전쟁 때도 소실되어 중건하는 등 수차례에 걸쳐 화재와 중건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그 이후 거듭된 화마(火魔)와 수마(水魔) 그리고 한국전쟁으로 사찰은 파손되어 겨우 명맥만 유지되어 오다가 90년대 들어서 오늘날의 규모로 중창이 되었다.

조선 정조가 하사한 관음보살상 6첩 서병과, 진표율사의 진영을 비롯한 16점의 진영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하지만 해방 후 사라졌고, 현재 진표율사가 절 창건 당시 함께 짓고, 1401년 개축한 부속 암자 미타암과 2012년 정휴화상이 창건한 영은암, 죽암당 부도를 비롯한 15기의 부도가 남아 있다.

1990년 9월 7일 설법전이 강원도문화재자료 제114호로 지정되었다. 2012년 정휴(正休)화상의 원력과 불사로 영은암(靈隱庵)을 창건하고, 2014년 동선스님이 멀리 동해바다를 바라보는 미륵부처님을 모시고 불자들을 맞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