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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신륵사(神勒寺, 제천 월악산)
2018-11-29 17:27:57

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월악리 월악산(月嶽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법주사의 말사이다.

신라 진평왕 4년(582) 아도(阿道)화상이 창건했다고 하나 이때는 이미 아도화상이 입적한 이후이므로 나중에 창건자로 삼은 것으로 추정된다. 문무왕 때 원효(元曉)대사가, 고려 말 무학(無學)대사가 각각 중창했으며 조선 광해군 때 사명(四溟)대사가 다시 중수한 바 있다. 1950년 6·25전쟁 때 폐사된 것을 1960년대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른다. 1981년에 삼층석탑을 해체하여 보수한 바 있다. 이후 근래에 들어와 2001년에 산신각을 창건한 것을 비롯해 약사당과 요사를 신축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현재 신륵사에는 지정문화재로 극락전(시도유형문화재 제132호)과 삼층석탑(보물 제1296호)이 있다. 괘불대·부도 등도 전한다. 신륵사는 월악산(해발 1094m) 동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월악산 동북쪽 기슭을 흐르는 광천을 거슬러 올라가다 그 지류인 월악산에서 발원한 계곡을 따라 올라간 깊은 산속에 위치하고 있다. 절이 위치한 동북쪽으로는 죽령이 있다. 죽령은 남한강 수계를 통해 경상도로 넘어가는 중요한 교통로상의 요지이다. 또한 신륵사의 남쪽에는 지릅재와 하늘재, 새재 등 남한강과 낙동강 수계를 연결하는 주요한 교통로가 위치하고 있다.

이 절의 명칭이‘신륵사’로 불리게 된 사연이 있다. 신라 문무왕 때 수경대에서 백일기도를 한 후 득도하고 이 절에 내려와 있던 고승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절 아래인 월악 마을 일대에는 괴질이 돌아 많은 사람들이 죽거나 병에 걸려 고통을 겪게 되었는데 이는 스님을 시기한 귀신의 짓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어느 날 스님이 수경대에 올라 병풍 바위에 숨어있던 귀신을 잡아 코를 꿰어 항복을 받으니 마을에 돌던 괴질이 씻은 듯이 없어졌다. 그 이후로 이 절을 신륵사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경내 한쪽의 국사당은 원래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의 수경대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국사당을 모시게 된 것에는 내력이 있다. 월악산은 예부터 명산으로 몽고 병이 침입했을 때나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등 큰 전란이 있을 때마다 이 부근 사람들은 월악산 신당에 모여 난을 피했다고 한다. 이런 큰 난리 때마다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월악산 신당의 무량한 영험 때문이라고 믿던 이곳 사람들은 신사에 제사지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사람들의 생활이 어려워지자 월악산 신당은 방치되어 폐허화되었으며, 이후 인근 마을은 때 아닌 가뭄으로 흉년이 들고, 대홍수가 났으나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이때 신륵사 스님은 이처럼 흉년이 드는 것은 사람들이 월악산 산신에 대한 은혜를 저버렸기 때문이라 하여 절 경내에 국사당을 지어 월악산에 상주하는 신령님을 봉안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월악산 신륵사. 똑같은 이름이지만 여주 신륵사와는 비교조차 안 될 정도로 작고 아담한 절이다. 절의 입구를 알리는 일주문이나 천왕문을 여기서는 찾을 수 없다. 나지막한 돌담 뒤로 기와가 보이는 극락전은 고색창연하다. 흐릿한 단청 색깔은 윤곽조차 희미하다. 빛바랜 창호도 그 세월을 가늠키 어렵다. 남쪽을 바라보며 일직선상에 놓인 극락전과 석탑을 기점으로 쌓인 돌담은 좌우로 각각 54m, 합쳐서 108m다. 인간의 백팔번뇌를 상징한다.

월악의 가장 깊은 골에 자리 잡은 신륵사 주변은 연화지지(蓮花之地), 즉 연꽃 형상의 천하명당이다. 신륵사는 연꽃의 수술 부위에 해당한다.
험한 산을 일컫는‘악(岳)’이라는 말 때문에 왠지 모르게 위압적으로 느껴졌던 월악의 연봉(連峯)은 연꽃잎처럼 포근하게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