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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태안사(泰安寺, 곡성 동리산)
2018-11-29 17:22:21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에 있는 사찰로 대안사(大安寺)라고도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의 말사이다. 경덕왕 1년(742) 신라 하허삼위신승(何許三位神僧) 즉 절이 처음으로 문을 연 것은 세 신승들에 의해서였다고 하나 고증키 어렵고 적인선사의 비문에 의하면 적인선사 이전에 원래의 절이 있었음이 확인될 정도이다.

고려 태조 2년(919) 광자대사(廣慈大師) 윤다(允多)스님이 132간을 중창했다. 개산조(開山祖)인 혜철국사(慧徹國師)가 이 절에서 법회(法會)를 열어 선문구산(禪門九山)의 하나인 동리산(桐裏山派)의 중심사찰이 되었다. 고려 중기 이후 사세가 축소되다 조선시대에 배불정책으로 쇠퇴해졌다. 숙종 9년(1683) 정심(定心)선사가 중창했으나, 6·25전쟁 때 대웅전 등 15채의 건물이 불탔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천불보전·만세루(萬歲樓)·해회당(海會堂)·선원(禪院)·능파각(凌波閣)·일주문 등이 있다. 이 중 해회당은 네모꼴로 이어진 큰 건물이고, 선원 역시 전국 굴지의 규모이며, 대웅전은 6·25전쟁 때 불탄 것을 곡성군의 보조로 1969년에 재건하였다. 또 능파각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2호로 지정되어 있고, 일주문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되어 있다.

태안사는 1925년 최남선(崔南善)이 찾아와“신라 이래의 이름 있는 절이요, 또 해동에서 선종(禪宗)의 절로 처음 생긴 곳이다. 아마도 고초(古初)의 신역(神域) 같다.”고 극찬한 곳으로 근래 청화대선사가 주석하며 중창 하였다.

태안사가 자리잡은 산을 동리산 또는 봉두산이라 부르는데, 봉두산은 북동쪽에 해발 752.9m의 높이로 솟아 있는 산을 가르키며, 동리산은 구선선문의 한 문파를 일컫는 이름이다. 봉두산은 봉황의 머리 같은 형국의 산 모양에서 따온 것이요, 동리산은 오동나무의 안쪽이라는 뜻으로 봉황과 오동의 상관관계를 짐작케 한다.

태안사는 곡성의 비밀스럽고도 아늑한 곳에 자리 잡은 천혜의 사찰이다. 보성강의 순한 물줄기가 한허리를 베어 지나는 동리산의 아늑한 분지에 자리한다. 절도 절이려니와 입구에서 태안사까지 이르는 2km의 계곡 풍치는 가히 절경이다. 볼거리가 무진장해서가 아닌, 햇살 한 줌 스며들지 못하게 촘촘하게 나무가 자라 숲 터널을 이루기 때문이다.

현재 대웅전·보제루·해회당·선원·능파각(지방유형문화재 제82호)·일주문(지방유형문화재 제83호) 등의 당우가 있다. 또 경내의 적인선사조륜청정탑(보물 제273호), 광자대사탑(보물 제274호), 광자대사탑비(보물 제275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바라(보물 제956호), 천순명동종(보물 제1349호), 삼층석탑(문화재자료 제170호) 등이 있다.

태안사 계곡의 마침표는 능파각이 찍는다. 옛 선인들의 풍류가 느껴지는 능파각은 옹골찬 나무로 만든 다리이자 정자이다. 계곡을 건너는 다리임에 분명하면서도 편액을 걸고 기와로 지붕을 얹었으니 정자다. 능파각 아래 7m의 와폭이 있다. 수량이 많을 때는 바위가 깨어 져라 넘쳐흘러 시원하고, 수량이 적어도 미끄럼을 타듯이 바위를 타 고 내리는 물보라가 좋다.

능파각 위에는 경찰 충혼탑이 있는데 6·25 동란 때 곡성을 사수하기 위해 태안사에 전투 본부를 차리고 인민군과 치열한 전투 끝에 산화한 경찰 47인의 충혼을 기리기 위해 세운 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