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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53기도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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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숭림사(崇林寺, 익산 함라산)
2018-11-29 17:19:45

전라북도 익산시 웅포면 송천리 함라산(咸羅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경덕왕 진표(眞表)율사가 창건하였다. 선종의 초조(初祖)인 달마대사가 중국 숭산의 소림사에서 9년 간 면벽좌선(面壁坐禪)한 고사에서 유래한 것으로, 숭산(崇山)의‘숭(崇)’과 소림(小林)의‘림(林)’자를 따서 이름 지은 것이라 한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명종 9년(1554) 화재로 소실된 보광전을 중건하고, 선조 22년(1589)에는 정혜원이 산불로 소실된 것을 선조 24년(1591)에 중창하였으나 조선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보광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탔다.

조선 광해군 5년(1613)에 보광전 불상을 조성하고 인조 12년(1634) 영원전에 봉안된 지장보살을 조성하여 임진왜란 이후의 사찰 중수를 위해 노력하였다. 인조 20년(1642) 정혜원을 삼중창하고, 숙종 23년(1697) 현재 영원전 건물로 사용되는 성불암의 칠성각을 건축하였다.

숙종 32년(1706)에는 왕과 왕비의 만수무강을 비는 전패가 조성되었으며, 1713년 성불암 법당을 새로 건축하여 불상을 개금하였다. 1737년에 임치번이 약 100명의 인원과 함께 공불계(供佛)를 조직, 여기서 나온 이익으로 부처님 앞에 늘 향화(香火)가 끊이지 않도록 하였다.

19세기에 들어서는 순조 19년(1819) 법당인 보광전을 중창하고, 철종 6년(1855) 우화루를 4중창하였으며, 철종 8년(1857) 보광전과 우화루를 각기 중수하여 법당 및 가람의 면모를 일신하게 되었다.

근래에는 1987년 주지로 부임한 지광스님에 의해 우화루 단청을 비롯하여 보광전 중수, 범종각·산신각 신축 등의 가람정비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건물로는 보광전과 우화루·정혜원·영원전·나한전·요사채 등이 있다. 이 가운데 보물 제825호로 지정된 숭림사 보광전은 진채(眞彩)로 그려진 아름다운 벽화는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유물로는 청동은입인동문향로(靑銅銀入忍冬紋香爐)가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7호로 지정되었다.

1345년 고려 충목왕 때의 일이다. 왕궁에서는 충목왕의 왕비 몸에난 등창으로 근심이 가득하였다.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여러 의원들이 병을 고치려 했으나, 등창은 갈수록 심해지고 왕비의 몸은 점점 야위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왕비는 지난날의 일들을 회상하며 관세음보살을 부르다가 잠이 들어 꿈을 꾸게 되었다. 꿈 속에서 어느 사찰에 자신이 머무는 동안 병이 씻은 듯이 낫게 되었고, 꿈에서 깨어난 왕비는 그 사찰의 모습과 산세를 일러주며 절을 찾게 하였다. 마침내 찾게 된 절이 바로 지금의 숭림사였으며, 왕비는 숭림사에서 자신의 몸을 바쳐 관세음보살에게 일주일동안 기도를 드렸다.

마지막 기도를 드리던 날, 기도 중 향긋한 향기에 취해 잠시 잠에 빠져든 왕비는 꿈 속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날아와 자신의 몸에 난 등창을 핥아주는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깬 왕비는 몸이 날듯이 가벼워졌음을 느끼고 등창을 살펴보니 깨끗이 나은 채 미묘한 향 내음이 풍기는 것이었다.
이에 왕비는 관음보살께 눈물로 기도를 드렸으며, 병이 완치되어 궁궐로 돌아간 왕비는 그 이후 숭림사에 전답을 하사하고 왕실의 원찰로 삼아 관음기도도량으로 하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어느 날, 평소 불상을 탐낸 일본인들에 의해 지장보살상이 수탈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불상을 훔친 일본인들은 숭림사에서 가장 가까운 군산항을 통해 불상을 일본으로 옮기려 시도하였다. 그러나 불상을 실은 배가 출발하려고만 하면 태풍이 불어 항해가 중단되거나, 선장이 피를 토하고 죽거나, 선원들 사이에 칼부림이 일어 배가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일들을 겪은 그들은 두려움을 느끼며 불상을 군산항 보급창에 내팽개친 채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후 시간이 흘러 광복이 되었고, 어느 날 한 선원(船員)이 보급창에 들어갔다가 구석에서 금빛이 환히 방광하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곳에는 금칠이 다 벗겨진 채 시커먼 옻칠만 남아 있는 지장보살상이 있었고, 그 몸에서는 금빛의 서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선원은 지장보살의 복장기록과 옛 이야기들을 수소문하여 본래 모셔져 있던 숭림사를 찾게 되어 영원전에 봉안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