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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문수암(文殊庵, 고성 무이산)
2018-11-29 16:56:50

경남 고성의 문수암(文殊庵)은 고성군 상리면 무이산(武夷山)에 있는 암자로 제13교구본사 쌍계사 말사이다. 신라 성덕왕 5년(706)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했다. 무이산은 청량산(淸凉山)의 다른 이름으로 산세가 수려하여 삼국시대부터 해동 명승지로 화랑들의 수련장으로도 널리 알려졌다.

문수암 창건에는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하고 있다. 의상대사가 남해 보광산(普光山: 지금의 錦山)으로 기도하러 가던 길에 무선리의 민가에 묵게 되었다. 꿈속에 한 노승(老僧)이 나타나서 내일 아침에 한 걸인을 따라서 보광산보다 무이산을 먼저 가서 마음공부를 하라고 하였다. 이튿날 의상대사 앞에는 노승이 현몽했던 것처럼 한 걸인이 나타나 무이산으로 안내했다. 지금 문수암의 문수단이 있는 곳까지 안내된 의상대사는 눈이 휘둥그레 해졌다. 눈앞에 수많은 섬들이 떠 있고, 남대·북대·동대·서대는 웅장하여 마치 오대산(五臺山)의 중대(中臺)를 연상하게 하였다. 이 때 한 걸인이 또 나타나서 한 걸인의 서로 손을 잡으며 바위 틈새로 사라져버렸다. 걸인을 찾기 위해 바위틈을 살펴보던 의상대사는 다시 한 번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석간지벽(石間之壁), 즉 낭떠러지 바위틈 사이에 흰빛 문수(文殊)보살이 보관을 쓰고 있는 것이었다. 의상대사는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꿈속의 노스님은 관세음(觀世音)보살이고 두 걸인이 문수·보현(普賢)보살임을 깨달고 문수암을 세웠는데, 지금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의 문수보살상이 뚜렷이 나타나 보인다.

문수암은 남해 금산(錦山) 보리암(菩提庵), 청도 운문사(雲門寺) 사리암(舍利庵)과 함께 영남의 3대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문수암은 생남(生男) 기도로 득남에 영험이 많다고 전해지고 있다. 특히 문수암에서 기도를 하여 낳은 아이들은 머리가 좋으며, 시험합격을 바라는 불자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곳이다.

문수암은 조선 인조 20년(1642)에 이르러 중창되었다고 하나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고 있다. 현대에는 청담(靑潭)대종사께서도 이곳에서 수도 정진 하였다. 청담대종사는 6·25무렵 금선태(金仙台) 토굴에서 10년 동안 참선하였으며, 정천 스님은 그때부터 시봉한 상좌(上佐)로서 이래 40년 동안을 줄곧 이 한 절에만 머물며 중창불사하고 수도에만 정진하였다. 법당 안에는 관음보살이 가운데 모셔져 있고 그 오른쪽엔 지장보살 그리고 왼쪽엔 문수보살상이 모셔졌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크고 작은 많은 섬들이 마치 군상봉처럼 떠올라 있어 절경을 조망할 수 있는 절호의 승지이며 전망과 주변을 짜 올리듯 떠받치고 있는 기암괴석의 조화, 그리고 뻗어 내리는 산줄기 의춤추는 듯한 모습이 가히 일품으로 느껴진다.

탁 트인 남해 바다가 앞마당처럼 다가오고 멀리 사량도(蛇梁島)가 있고 그 밖으로는 연화도(蓮華島) 욕지도(欲知島) 세존도(世尊島)가 있는 바다이다. 연화세계가 어디인지 알고 싶으면 세존도로 가보라는 뜻이 이들 섬의 이름에 표현돼 있다는 섬들이다.

비록 세상사와 동떨어진 외로움은 없지 않겠지만 마음을 다잡아 이 토굴에 앉는다면 목석(木石)도 깨우침을 얻을 것 같은 그런 공간이다. 세간사를 여의고 푸른 바다를 내다보며 묵묵히 염주만 굴릴 수 있는 스님들의 초연함이 부러워지는 곳이다. 문수암에서 내려오다 보면 지은지 오래되지 않은 약사도량 보현암(普賢庵)이 있다. 걸인으로 화현했던 두 보살 가운데 보현보살도 친견하라고 청담대종사의 상수제자인 정천 스님의 원력으로 창건된 사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