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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53기도도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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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축서사(鷲棲寺, 봉화 문수산)
2018-11-29 16:55:37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개단리 문수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 13년(673)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하였다.

창건 설화에 의하면 당시 인근 지림사(智林寺)의 주지가 산 쪽에서상서로운 빛이 나오는 것을 보고 광채가 나는 곳으로 달려갔더니, 한 동자가 아주 잘 조성된 불상앞에서 절을 하고 있었다.

얼마 후 그 동자는 청량산(淸凉山) 문수보살이라며 구름을 타고 사라져 버리고 불상만 남았다. 훗날 이 사실을 의상대사에게 알려 그곳으로 가
보니 비로자나불이 광채를 발하고 있어, 그 자리에 절을 짓고 불상을 모셨다고 한다. 이 때 산 이름도문수보살이 출현하였다 해서 문수산이라 한듯 하다. 지림사는 오늘날 수월암(水月庵)이라고 한다. 신라 경문왕 7년(867) 부처님 사리 10과를 가져와 사리탑을 조성하였으며, 이후 참선수행도량으로 유명해졌다. 이후 조선 숙종 31년(1705) 중건하였는데, 당시 법당 등의 전각 6동과 광명루 및 승방 10여 동이 있었던 큰 절이었다고 한다.

축서사란 이름은 독수리 축(鷲), 부처님께서 설법을 하시던 영축산을 본따‘축’으로읽는데,‘ 취’라고도읽는다. 깃들서(棲) 즉독수리사는 절이라는 뜻으로 독수리는 지혜를 뜻하며 지혜는 바로 큰 지혜를 가진 문수보살님을 뜻하므로 축서사란 이름을 붙인 듯하다. 한편 험준한 뒷 산세가 풍수지리학상으로 독수리 형국이므로 축서라 명명했다고 보는 이도 있다. 3년 뒤에 의상대사께서는 축서사에서 40여리 떨어진 봉황산 중턱에 대찰을 세웠으니, 동국화엄제일도량인 부석사이다. 흔히 축서사를 부석사의 큰 집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대웅전 상량문에 의하면 이 절은 광서(光緖) 7년(875)에만 해도 대웅전, 보광전, 약사전, 선승당, 동별당, 서별당, 청련당, 백화당, 범종각 등 여러 동의 건물이 있었다. 산내 암자만도 상대, 도솔암, 천수암 등 세 개나 되었고, 대중이 44명이 살았으며 대웅전 본존불에 기도하면 영험이 있다 하여 기도처로 유명한 사찰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조선조 말기 을사보호조약(1905)과 정미 7조약(1907)으로 왜구의 속국화 되는 것을 분개하여 전국적으로 의병이 무장봉기하여 항일투쟁 할 때 축서사에도 일본군이 의병을 토벌하기 위한 작전으로 방화하여 대웅전 1동만 남기고 전소되었다. 이 때 천년 고찰로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던 축서사는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었고 오랫동안 전해내려 오는 수많은 유물이 없어지고 말았다.

그 후 한 동안 폐사로 있다가 일제 말기에 삼성각과 한국전쟁 직후에 요사 1동을 신축하여 사찰의 체모를 유지하다 최근에 서기 1980년 전후에 요사 1동과 토굴 2동을 신축하였다. 이후 무여스님이 중창불사를 완공했다.

축서사에는 보물 제1379호 괘불탱화, 보물 제995호 석불좌상부광배와 도문화재자료 제157호인 삼층석탑 및 도문화재자료 제158호인 석등이 있다. 보기만 해도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은 전국 제일의‘자연풍광’을 괘불처럼 항상 내걸고 있는 봉화 축서사 같은 곳이면 더욱 좋다. 축서사의 풍광이 부석사 무량수전 앞에서 보는 소백산맥 줄기처럼 호쾌한 장관이라고 사람들은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