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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용문사(龍門寺, 예천 용문산)
2018-11-29 16:46:56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내지리 용문산(龍門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김룡사본말사지(金龍寺本末寺誌)》에 따르면, 신라시대 경문왕 10년(870)에 두운(杜雲)조사가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두운조사가 이산의동구에이르렀을때,‘ 바위위에서용이영접하였다’하여절이름을 용문사라 하였다. 절을 짓기 시작하였을 때, 나무둥치 사이에서 무게 16냥의 은병(銀甁)을 캐어 공사비에 충당하였다는 전설이 있다.

고려 태조 왕건은 후삼국 정벌 중에 이 절에 머문 적이 있었는데, 훗날 천하를 평정하면 이곳에 큰 절을 일으키겠다는 맹세하였다. 그 뒤 태조 19년(936) 칙명으로 이 절을 중건하였고, 매년 150석의 쌀을 하사하였다.

고려 의종 19년(1165)에는 왕의 칙명으로 중수하였으며, 명종 1년(1171) 태자의 태(胎)를 보관한 뒤 절 이름을 창기사(昌期寺)로 바꾸고 축성수법회(祝聖壽法會)를 열어, 낮에는《금광명경(金光明經)》을 읽고, 밤에는 관세음보살을 염하는 의식을 항규(恒規)로 삼았다. 이 법회를 끝마친 뒤 다시 선문구산(禪門九山)의 승려 500명을 모아 50일 담선회(談禪會)를 열었다.

조선 성종 9년(1478) 소헌왕비(昭憲王妃)의 태실(胎室)을 봉안하고, 1480년 정희왕후(貞熹王后)가 중수하여 성불산 용문사라 하였다. 그러나 정조 7년(1783) 문효세자의 태실을 봉안하고는 다시 소백산 용문사로 고쳤다.

이 절에는 세 가지 이적이 있었다. 첫째는 두운조사의 창건 때 용이 영접한 일이고, 둘째는 은병을 캐어 절을 공사비에 충당한 일이며, 셋째는 절의 남쪽에 구층청석탑(九層靑石塔)을 세우고 사리를 봉안할 때 4층탑 위로 7색 광명 구름이 탑 둘레를 돈 일이다.

문화재로는 윤장대(보물 제684호)·교지(보물 제729호)·목불좌상 및 목각탱(보물 제989호)·대장전(보물 제145호)·자운루(경북문화재자료 제169호)가 있다. 그밖에 현존하는 당우로는 진영각·명부전·응진전·회전문·범종루·강원·천불전·일주문·요사채·보광명전·응향각·단하각·해운루와 두운암(杜雲庵) 등이 있다.